Jun 23

햇살 부서지는 오후, 따사로운 마당에 앉아 곱게 우려낸 차를 마시거나, 오랜 숙성의 과정을 거친 짙은 향의 치즈 한 조각에 전통의 키안티 와인 한 잔을 곁들인다. 재래시장이 열리는 광장과 산업화의 맹공격에서 살아남은 오래된 건물들 틈을 거닐며느끼는 옛 조상의 손길과 숨결…….‘느리게 사는 도시’의 단순하고도 멋스러운 삶이다.오르비에토(Orvieto),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 브라(Bra), 포지타노(Positano). 1999년 10월 15일이탈리아 4개 도시에서 시작된 치타슬로(도시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치타’와 영어의‘슬로’를 합성시킨말) 운동. 거대 수퍼마켓, 대형 교통수단, 패스트푸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건축과 옛 것을 무분별하게 부수고 쌓아 올리는 신도시…물질주의와거대화라는 현대문명에 염증을 느낀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며 형성한 네트워크는, 이제 전 세계 11개국이 함께 하는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패스트 푸드? No!
슬로시티 멤버가 되려면 인구 5만이하의 소도시에, 깨끗한 친환경적먹거리를 지향하는 슬로푸드 운동을함께 진행시켜야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전 세계 소도시들까지 급격하게파고든 거대자본의 패스트푸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는데, 1986년 이탈리아 브라에서 시작, 89년 11월 구르메(gourmet/식도락)의 나라 프랑스파리에서 공식적인 국제운동으로 출범했다. 신뢰하기 힘든 식재료와 고단백, 고지방의 패스트푸드는 빠른소비문화의 흐름을 타고 어린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소아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비난받아 왔다.‘ 에릭 슐로서’는 그의 저서‘『패스트 푸드』(Fast Food Nation: 미국 음식의어두운 이면/에코리브르, 2001년 )’에서, 패스트 푸드의‘공장식 제조과정’을 지적한다. 숙련되지 않은 조리사들도 공장형 주방에서 똑같은 햄버거를 찍어낼 수 있는데, 햄버거에 사용된 고기 한 조각에는 수십, 수백 마리의 다른 소들에서 나온 고기들이섞여 있다는 것이다
느림의 미학…
한국은 전남4개 지역이 슬로시티에 동참슬로시티 운동은 패스트푸드를 배격하고,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데부터 시작한다. 당연히 삭히고, 끓이고, 식히고, 달이는, 숙성, 저장의 조리 과정을 중요시한다. 발빠른 공장형 대량생산이 아닌, 지역의전통음식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차별화된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보다 여유 있는 미식의 즐거움을 소비자들에게 안겨다 준다. 또한 초대형 마켓대신 재래시장을 선호하고, 대체에너지를 연구하며, 자전거 타기와 도보를 권장한다. 토속 먹거리나 전통을 계승하는 지역 특산품, 보존된 깨끗한 자연환경과 친환경 정책은 슬로시티의 필수조건이다.
현재 슬로시티 가맹도시는 영국,스페인, 독일, 폴란드, 포르투갈, 노르웨이, 벨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11개국 100여 개 곳. 그 중 이탈리아에만 56개의 슬로시티가 있다.올 1월 21일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남4개 지역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담양군 창평면(전통 가옥마을, 돌담길 조성, 죽공예품, 한과), 장흥군 유치면(특산 표고, 장수풍뎅이 자연학습장, 지렁이 농법), 신안군 증도면(천일염전, 석조소금창고, 천혜의 갯벌),완도군 청산면(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청산진성, 돌담길). ‘느림’은 더이상 낙오가 아니다. 발전이 더뎠던묻혀진 농촌 마을들이 슬로시티 네트워크의 검증된 인증상표‘달팽이’를달고, 국제적 관광도시로 비상할 준비를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느림의미학이 이제 경제적으로도 보상을 받는 것. 차별화된 환경과 문화의 청정지구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면 잘안내된 가이드라인도 구비해야 할 요건이다.
‘빨리빨리’라는 생활습관이 어느덧 습성인 양 굳어버린 한국…“. 슬로시티 운동은 대안적인 삶이 아니고원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손대현 위원장(한국 슬로시티 추진위원회)의말이 새삼 무게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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